해녀일기

거제해녀학교, 1년의 기다림 그리고 시작

Jenny the Sea 2021. 5. 31.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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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에 내려온 지 이튿째날,
오전 일찍 해녀 아카데미 면접에 임하기 위해 진두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면접시간보다 1시간 일찍 도착하였는데도 먼저 와 계신 면접자분들이 많았어요. 뭐든지 너만 열심히 하는게 아니라는 엄마 말씀이 문득 스칩니다ㅎㅎ

자그마한 진두항


전일 체력 시험일 때에는 모두 수트와 장비를 입은 채 마주해서 인사하기도 어색했는데 평상복을 입고 서니 함께 면접보는 분들과 조금은 친밀해진 느낌이었습니다. 분명 저처럼 해녀에 대한 열의 하나만 가지고 멀리서 오신 분들이었을 테니까요.

대기장소에는 해녀 문화의 근원인 불턱처럼 작은 모닥불이 따듯하게 피워 있었습니다. 긴장되지 않도록 이런 저런 재미난 말씀을 해주며 안내해주신 관계자분들 덕에 마음까지 따듯했네요.


이렇게나 '해녀'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내가 꼭 함께 하지 못하더라도
그 자체로 감사하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새 면접 순서가 되었고, 다른 한분과 짝이 되어 두 사람이서 면접 장소로 들어갔습니다. 5명이서 회의실에 우르르 들어서야 했던 제주와는 달리 좀 더 편안한 가정집 느낌의 면접장이었어요. 면접장에는 조합장님과 해녀학교 교장님 등 평가하시는 분들이 6분이나 계셨습니다. 그래도 거실에서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느낌이라 인원수에 압박감이 크게 느껴지진 않았어요.

역시나 이번에도 해녀를 지원하게 된 동기와 직업으로 삼으려는 의지를 평가 받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제주에서는 막연한 계획만 가지고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못했던 것과 달리 이번엔 제가 정말 거제에 내려와 정착하기 위해 조사한 것들, 그리고 어느 시기에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에 대해 소신껏 답변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이야기 말미에는 해녀가 얼마나 힘든일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양성이 필요하며 교육생이 가져야 하는 태도가 무엇인지 재차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문득 지난 4월에 제주 면접 순간이 겹치듯 떠올랐습니다. 그 때는 그런 말을 들었을 때도 '저는 무조건 할 수 있어요. 할게요.' 라고 당돌하게 대답했었죠.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제가 했어야 하는 대답은 단순히 하고 싶은 마음을 넘어선 확고한 의지였는데, 그것을 한달이 지난 5월, 이 거제학교 면접 자리에서 깨우쳤네요.

그래서 이번엔 함부로 당돌하게 해내겠다고 답하지 않았어요. 아니 못했죠, 이미 한번 탈락했을 때 어쩜 나는 자질이 없을 수도 있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였거든요...
조심스럽게 어떠한 각오로 임할 것이고 실패하더라도 다른 기회를 만들어 이곳 거제에서 해녀를 알리는 일, 양성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이라도 하고 싶다고 마음 깊은 곳의 진심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과연 제 진심이 통할 수 있었을까요?

면접 순서를 기다리며...


그렇게 이번에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압박이 가득했던 면접이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서울로 올라가는 차안이었습니다..

올라가는 긴 시간 동안 후회 보다는 속이 시원했습니다.
제주에서 말하지 못했던 내 마음과 의지를 어쨌든 한번이라도 풀어낼 수 있었고 결과를 떠나 이번 년도 해녀 모집에 최선을 다한 느낌이라 후회가 없었어요. 이대로 탈락하더라도 덤덤히 받아들이고 내년에 다시 잘 준비하고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를 기다리는 그 주 주말에는 추자도로 훌쩍 떠나버렸습니다. 결과를 기다리며 1분 1초 시계만 바라보기 싫었고, 혹시나 교육생이 된다면 더이상 주말에는 바다에 ‘놀러’ 들어갈 수 없을테니까요.

시름을 잊게하는 추자도의 바다


추자도 바다는 듣던대로 아름답고 경이에 가까울 정도로 날 것의 자연 그대로였습니다. 제주는 좀 더 사랑스럽고 아기자기한 바다였다면 추자는 거칠고 무서운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속깊은 바다였죠. 시간을 잊고 하루를 보내기에 너무나 완벽했죠.

그리고 거제를 다녀온지 일주일 지난 5월 20일, 해녀아카데미 6기의 신청 결과를 문자로 받았습니다.


눈물나게도...
합격자 명단에 있는 제 이름을 발견하였어요 ! 

한글자한글자 다시 읽으면서도 설레이고, 오랜 시간 꿈꿔오기만 했던 일들을 하나씩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에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와 불안이 모두 사라졌어요. 지금의 생활보다 더 어렵고 험난한 시기를 맞딱 드릴 수 있겠지만 그만큼 보람과 알찬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설레임이 컸습니다.

이렇게 2021년,
35살의 10년차 직장인 Jenny는 반대편 끝 거제해녀아카데미의 6기 교육생이 되었습니다. 우여곡절이 많겠지만 저의 이야기를 하나씩, 차근히 기록해 보려 하여요. 언젠가 단 한분이라도 저와 같이 바다에 빠져 살고 싶은 분이 해녀학교에 도전할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이 소소한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요ㅎㅎ

성공이 되든 실패가 되든 한번 지켜봐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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